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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연지기로 인의를 가르친 예안향교(禮安鄕校)
조선시대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한고을에 하나의 교육기관인 향교를
두었으며 예안현에 설치하였던 향교가 예안향교 이다.
예안향교는 조선초기 1411년(태종11)에 창건이래 수차례의 중수를 거쳐왔고
2010년에는 임란당시 멸실된 양호루를 복원하였다.
조선시대에 국가로 부터 토지와 노비,책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94)후 신학제 실시로 교육의 기능은 없어지고
지역 유림들로부터 봄.가을 석전봉행과 삭.망의 분향이 시행되고 있다.
향교의 강당의 명칭은 명륜당(서원은 서원별 다름)으로 통일되어있고 동서재는
예안향교는 거인재(동재)와 유의재(서재)라 하며 맹자의 居人由義에서 취했다.
거인유의는 인간에게 환경이 영향이 크다하여도 순임금과 같이 깊은 산속에서
야인들과 다를바 없이 살았으나 착한 말을 듣고 착한 행동을 보면 그대로
실천에 옮기는 노력이 있어 성인이 되기도 하였다는 뜻이다.
낮의 거칠고 문란한 행동과 밤의 안식을 통하여 순화하고 아침의 맑은 기운을
일어 사람은 다시 새롭게 될수있으나 문제는 자포자기 하는데 있다.
맹자는 입만 열면 예의를 비난하는것을 일컬어 자포(自暴)라 하고 스스로 仁에
거쳐하고 義를 지키지 못한다고 여기는것을 자기(自棄)라고 하며 자포하는
사람과는 말을 같이 할수없고 자기하는 사람과는 일을 같이 할수없다고 했다.
양호루는 맹자 養浩然之氣에서 취하여 천지에 가득한 넓고 큰 올바른 기운을
받아드려 사특한 마음을 막고 자신의 착한 본성을 지킨다는 의미이다.
향교입구에 창건시 심은것으로 추정되는 600여년 되는 은행나무가 있었고
명륜당앞에는 조선말 외세 침입시 나라를 지키기 위한 의병활동시 심은것
으로 추정되는 '안동'이라는 품종의 무궁화가 100여년을 지키고 있었으나
고사되고 2세목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또 무궁화 '안동'은 남원의 무궁화 '남원'과 꽃가루 교배로 영호남 화합의
신품종 '삼천리'무궁화를 탄생시킨 어미나무로 더욱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향교를 돌아본 우리는 양호루 망루에 앉아서 함게한 이종희 수석장의에게
배향된 성현들과 석전시 집사들의 역할, 향교와 서원의 차이등 향교에
관한 상식을 배웠으며 상세한 설명을 하여주신 이종희 장의님께 감사를
드리며 마지막 답사지인 월천서당을 찾아 다래마을로 갔다.
세상사 한마디
예안지역은 많은 항일 의병과 순국지사 독립운동가를 배출하였고
이 향교에서 공부하던 유생이 민족혼과 민족정기를 되살리기 위해
명륜당앞에 무궁화를 심으며 민족혼을 불태웠을것으로 추정되며
은행나무와 '안동'무궁화가 예안향교의 보물로 수몰민들의 애환과
옛 사람들의 은근한 자존심을 지켜며 서 있지 않을까 ???
어미목은 고사되고 2세목이 지켜가고 있어 아쉽네요 !!!
고사되기전의 무궁화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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