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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래마을 원천서당(月川書堂)
다래(月川)마을은 부용봉 아래 옛날 초목이 무성하고 짐승들이 떼지어 다녀 '솔내'라 하였고 부라촌 동지 권수익이 1494년 옮겨살며 사람들이 솔내→달래(月川)→'다래'라 불렀고 부라(浮羅)의 맞은편이라 대라(帶羅)라 하였는데 권수익의 사위 조대춘이 예천에서 옮겨와 살았고 아들 조목이 동네에 살면서 자신의 호를 月川이라 하였다.
마을 뒷산은 芙容峰이고 앞에는 낙동강이 유유히 굽이쳐 흘러 백사장이 펼쳐지고 멀리 파둔산(破鈍山)이 안산을 이루며 마을안에는 松洞이라는 연못과 獨齋洞아라는 우물이 있었고 언덕위 채승선이 지은 月川亭, 정자아래 박수의의 水月臺, 권참판의 臨淸臺가 있었으며 월천선생이 81세시(1604)에 부용봉 구릉에 부용정사를 짓고 방을 靜觀齋, 마루를 高明堂, 연못을 君子池라 하였고 정사 동쪽에 淸遠臺, 그 아래 光霽臺, 서쪽에 彌高臺, 낙동강엔 風月堂이 있었다.
월천서당은 월천 조목선생이 조선 중종34년(1539)에 건립하여 거쳐하면서 후진을 지도하고 수학하던 곳으로 서당 오른족에 월천이 소요하던 소요단(逍遙壇)이 있고 동편에 동생 겸재 조정의 겸재정이 지어졌지만 모두 없어지고 월천서당과 겸재정만 남아 있어 아타깝고 현재 추진중인 3대문화권사업이 추진되면 이러한 유적들이 복권되기를 기대해 본다.
월천 조목(1524~1606)은 본관은 횡성이고 퇴계의 고족제자로 도산서원에 입문하여 경사와 도학을 익혔으며 1552년 생원시 합격후 과거공부를 그만두고 다래마을에 은거하고 1594년 일본과의 강화를 반대하는 상소를 하였고 임란때는 의병을 모집 하였으며 퇴계선생의 제자 가운데 유일하게 도산서원 상덕사에 모셔진분이다.
겸재 조정(1551~1639)는 겸양을 신조로 살았으며 월천선생의 아들 한사 조석봉이 월천서당을 중수하면서 숙부 겸재를 추모하기 위해 겸재정을 지었다고 하며 안동댐 수몰로 이건하였다가 현위치에 중건하였다.
월천서당의 입구에는 400여년이 된 은행나무가 서 있었고 아주머니 한분이 은행을 열심히 줍고 있었으며 월천서당을 돌아본후 겸재정에서 경전독송을 하였으며 다래마을에서 바라본 안동댐은 푸르던 호수물은 어디로가고 조그만 개울물만 흘러 부포마을을 오가던 배는 멈춘지 오래고 잡초만 무성하여져 가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여 금년 가믐도 어려웠지만 내년 봄은 더 걱정이 된다.
오늘도 자연을 즐기며 유적답사도 하고 경전독송을 하면서 하루를 보냈으며 모두들 선비를 닮아가는것 모습들이 보이기는 하나 선비는 아직 먼것 같다. 답사에서 상세한 설명을 하여주신 이동수 학장님과 권석환 국장님께 감사를 드리며 함께 하여주신 회원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세상사 한마디 우리의 선조들은 밟아도 벌레가 살수있는 짚신을 신었고 들판의 짐승들과 새들이 먹게 고수래로 음식을 남기고 까치가 먹고 살으라고 감나무에 까치밥을 남겨두어 한마리 벌레들과 짐슬들도 함께 살려고 노력하였다. 나만의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과 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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