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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아카데미 연수생들이 임윤지당 선양관을 찾아서
한지테마프크를 나와서 단풍앞아 아름다운 도로변에 도착하니
'여성가족공원'이란 입간판이 보이고 공원안에 '임윤지당 선양관'이 있고
'국제걷기연맹'에서는 선양관앞에 '체크포인트'를 설치하여 어린이회원들과
태극기를 꽂은 산책객들이 체크를 하면서 음료수를 마시고 있었다.
允摯堂 任氏(1721~1793)는 조선후기에 활동한 여성성리학자로 본관은 豊川
아버지는 함흥판관 任適, 어머니 호조정랑 尹扶이고 鹿門 任聖周의 여동생으로
녹문의 학설을 계승하여 四端七情 人心道心說등 설리설과 시문을 담은
<윤지당유고>를 남겼으며 윤지당 호는 오빠 임성주가 지어준 당호이다.
조선의 두 여성학자이신 신사임당과 임윤지당의 당호는
申師任堂은 周나라 文王의 어머니 太任을 스승으로 본받는다는 뜻이고
任允摯堂은 太任과 太姒(문왕의 부인)를 독실하게 신봉한다는 뜻으로
주자의 允莘摯라는 글귀에서 莘은 태사의 친정고향이고
摯는 태임의 친정고향이라 한다
1729년(영조 5) 아홉살되던해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가족들과 청주 玉華마을로
이사하여 오빠에게 효경, 열녀전, 소학, 사서등 경전과 중국 역사서를 배웠으며
1737년(영조13) 여주로 이사하였고 1739년 원주의 선비 申光裕와 결혼하였고
1747년 남편이 사망하고 40이 넘어 시동생 申光祐의 아들(申在竣)을 입양했으나
1787년 28세로 사망하고 1788년 오빠 임성주도 사망하고
3년후 1793년 5월14일 본이도 작고하였다.
윤지당 작고 3년후 1786년(정조20) 친정동생 임정주와 시동생 신광우가
인물전기, 역사임물 논평, 학술논문(理氣論,心性論,예악론등)이 수록된 상편과
운문체의 箴, 銘, 讚, 제문등과 대학과 중요을 해설한 經義등이 수록된 하편과
언행록과 유사가 수록된 부록으로 된 <윤지당유고>를 발간하였다고 한다.
선양관을 관리하시는분께 윤지당에 대한 설명과 전시된 전시물을 돌아보고
상세한 설명과 안내를 하여 주신분께 감사를 드리며
남서중심의 유교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성리학을 공부하시고 후세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는 유고집을 남기신 윤지당의 업적에도 감사를 드리며
여성가족공원의 아름다운 가을을 구경하면서 박경리 문학공원을 찾아갔다.
세상사 한마디
남자의 도는 씩씩한 것이고 여자의 도는 순종하는 것이다
각기 그 법칙이 있다. 성녀 태사와 성인 문왕의 행적이 다른 것은
서로의 분수가 달랐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타고난 성품대로
최선을 다한 것은 그 이치가 같기 때문이다.
두 분의 처지를 바꾸어 놓았다면 역시 최선을 다 했을 것이다
-윤지당유고의 언행록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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