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일선산악회 육지속의 섬 영주 무섬마을 탐방

아까돈보 2025. 4. 16. 16:20

 안동 일선산악회 회원들은 4월 13일 경북 영주시내 사르네 정원을

탐방한데 이어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에 위치하고 있는 육지속의

섬 무섬마을을 찾았다.

안동시와 인접해 있는 영주 무섬마을이지만 나는 이곳을 이번에

처음 가 본다.

 

이날 오전부터 날씨가 흐리고 바람까지 많이 불어 비까지

오락가락한다.

무섬마을에 도착하니 벌써 많은 자가용 차들이 제방뚝에 주차해

있으며 마침 빈자리가 있어서 차를 세워놓고 동네 한바퀴를 돌았다.

때마침 초가집 두 채에 농민들이 노란 볏짚으로 지붕잇기를 하고 있다.

요즘은 어디를 가나 초가집을 볼 수 없어서 지붕잇는 장면을 보지 

못하지만 이곳에서 지붕잇는 모습을 보니 옛 생각이 저절로 난다.

  

무섬마을은 물돌이 마을로 마을을 휘감아 도는데 강물은 깊은 

곳이라야 허벅지에 찰 정도로 수심이 얕다.

안동하회마을이나 예천의 회룡포 마을처럼 물돌이가 비슷하다.

이날 무섬마을의 상징인 '외나무다리'를 걸을 계획이었으나 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가지 못하고 먼 곳에서 사진만 찍었다.

현재 이 외나무다리 길이는 150m에 이르고 폭은 30cm 에 불과하다.

옛날에는 무섬마을과 바깥을 잇는 길은 이 외나무다리가 유일한

통로였다.

장마철이면 불어난 물에 휩쓸려 가기도 하여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다리를 다시 놓는다.

무섬의 여인들은 외나무다리를 건너 가마를 타고 시집와서 

죽어서는 꽃 상여를 타고 마을을 나갔단다.

지금은 현대식 콘크리트 다리를 놓아 큰 차들도 다닌다.

이 외나무다리는 누군가 건너 오려하면 먼저 기다리는 양보 정신이

있어야 한다.

이런 양보와 상생의 정신이 400여년간 온전히 무섬마을을

유지하고 있다.

이 다리는 영주시의 대표적인 관광자원이자 한국관광의 별이

되어 있다.

 

무섬마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 중기인 1666년

(헌종 7) 병자호란 후 반남 박씨 입향조인 박수(1641 - 1729)가 강

 건너 머럼마을(현 탄산리)에서 이곳으로 건너와 마을을 개척하고

만죽재를 건립했다.

그 후 박수의 증손서인 김대(1732 - 1809)가 1757년(영조 33)에 처가

마을인 이곳에 들어오면서 반남 박씨와 함께 선성김씨가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대한제국 시기에는 120여가구 500명 이상이 살았을 만큼 번성했다.

일제 강점기인 1934년 큰 홍수로 마을의 절반 정도가 사라지는

시련을 겪었지만 해방될때까지는100여 가구가 사는 큰 마을이었으며

현재는 40여 가구 60여명이 살고있다.

이 가운데 16동은 100년이 넘는 조선시대 후기의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이다.

2013년 마을전체가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됐으며 2005년에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선정되었다.

특히 가장 오래된 입향조의 종택인 만죽재와 흥선대원군 친필 현판이

있는 해우당(海愚堂)은 최근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항일독립운동가인 김성규 가옥은 청록파 시인 조지훈(1920 - 1968)의

처갓집이다.

조지훈은 김성규의 장녀 김위남과 결혼, 자주 이 집에 머물렀으며

마을을 배경으로 남긴 시 별리(別離)가 있다.

무섬마을을 구경한 회원들은 오후 늦게 안동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