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갈때마다 맛 보게되는 일본음식은
우리들에게 재미난 이야기 꺼리를 마련해 준다.
오늘은, 몇년전 가까이 지내는 친구들과 여행했던,
북해도 여행길에 들었던 다꾸왕 내력담 부터 시작해 보려한다.
교토 다이도쿠지(大德寺) 주지를 지냈던 고승으로 전해지기도 하고
시나가와 에 있는 동해사를 개창한 고승이라고도 전하는
다꾸왕 소오호오 ( 澤庵宗彭, 1573~1645 ) 라는 스님이 계셨는데,
그 당시 소금이 귀하고도 귀해 일반 민가에선 배급이 돌아가지 않고
사무라이 번주나 호족, 절에 스님들에게만 지급되는 귀한 것이었단다.
법으로도 일반인이 소금을 먹으면 처벌을 받던 시절인데
이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이웃 서민들과 나누어 먹고 싶은 스님이
머리를 짜내어 무우를 소금으로 절여 이웃에 나누어주면
소금을 나누는 걸 금하는 법도 어기지 않고
결과적으로 소금을 나누는 게 되니까
무우절임을 만들어 이웃에 나누어 주게 되었단다.
그런데 그때 원칙하나를 덧 붙혔는데 밥 한공기를 먹을때
무우절임 세조각을 반찬으로 할수 있고 그것도
두조각을 먹고 한조각은 남겨
남은 한쪽을 이웃에 나눈다면
더 훌륭한 미덕이 되는 법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것에 연유하여 지금도 우리가 마음놓고 먹는
이 다꾸왕 무우절임을 일본서는 쬐그맣게 몇쪼가리 반찬으로 내어놓고
더 달라고 하면 돈을 받고 제공하는 버릇이 생긴 모양이다.
이 스님이 거하시는 사찰을 지나던 도쿠가와 이에야스 가
담백한 무우절임 맛에 반해 이 무우절임 이름을 스님이름을 따서
부르라고 명하여 오늘날 다꾸왕이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 였다.
포탈 싸이트 지식 검색에 들어가 보았더니
다꾸왕 스님은 혹은 한국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중국 선종의 정맥인 임제종의 승려로
임진왜란에서 병자호란에 걸쳐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無住心 不動智 가 수행의 요체라고 가르치고
일본 武道 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350 년이 지난 오늘까지 회자되는 큰 스님이었던 모양이다.
이런 단무지 하나에도 숫한 전설과 사연이 있다.
일본 밥상엔 젓가락 놓은 방법이 우리와 다르단다.
우리는 세로로 밥상에 놓지만 일본은 반드시 가로로 놓는다.
그건 시절이 하수상한 시절 젓가락도 무기가 될수 있어
바로 찌르는 자세인 세로로 세우는건 금물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밥을 먹으니
아~ 그런 이야기도 있었어? 하고 흥미로왔다.
언제나 그랬지만 이번에도 앞앞이 낱 상을 차려
옛날 우리가 개다리 소반에 따로 차려 주듯이
정갈하고 맛깔나게 차려 나온다.
1 회용 고체연료로 끊여먹는 것도 그렇고
튀김, 회, 꼬지 요리등이 그릇과함께
깔끔하게 차려져 마치 전시장에 나온 차림상 같이
우리의 탄성을 이끌어 낸다.
시중드는 아줌마들이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알뜰히 시중드는건 필수고 밥을 다 먹을때 까지
무릎을 끓고 앉아 한결같이 기다린다.
기모노를 입기도 하지만 유카타를 입고
시중드는 아줌마들에 마추어 우리 일행도
유카타 를 입고 앉으니 마치 조폭들
충성선언을 하러 모인것 같다면서 우리는 웃었다.
마지막날 저녁은 요즈음 유행하는
2 시간 동안 무한 리필되는 주종 구별없이
마음껏 마실수 있는 식당에서 우린 욕심을 부려
사케라는 정종, 일본소주, 그리고 맥주들을
자꾸자꾸 시켜 먹었다.
일본 사람들은 공짜로 준다고 해도 몸조심해 먹는다는데
우리는 공짜라고 얼마나 먹었는지 왁짜 하고 시끌벅적했다.
우린 이렇게 또 이번 일본 여행이 마감되었다.
그밖에 내가 찍은 디카 사진이 1000 장이 넘으니
디카 올리는 난에 하나씩 하나씩 올려 놓을 예정이다.
아니 우리 친구들은 가만히 앉아서
공짜로 구경하니 이래도 되는긴가?
내가 ?아다닌 수고는 어디서 받아내지?
그냥 주자니 아깝고
그렇다고 뾰족한 방법도 없으니
이를 어찌할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