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경기전과 어진박물관을 찾아서
한옥마을을 돌아보면서 한옥마을에 있는 경기전과 어진박물관을 구경하였다.
慶基殿은 조선왕조를 세운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보관하는곳으로
태종10년(1410)에 세워졌고 태조어진을 보관하던 건물은 개성,영흥,전주,경주,
평양에 있었으나 임진왜란(1592)때 모두 불탔고 경기전만 남았으나 경기전도
정유재란(1597)때 불타 1614년(광해군 6)에 다시 세웠고 회랑을 두어 최고의
사당임을 나타내고 입구 하마비, 홍살문, 내삼문, 외삼문, 초상화를
모신 전각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御眞博物館은 태조어진을 전주로 봉안 600년을 맞아 2016.11.6. 개관하였고
태조어진을 비롯해 어진봉안시 사용된 각종 가마유물과 경기전유물이 전사되고
세종.영조.정조.철종.고종.순종어진도 전시되어 있었다.
太祖御眞은 26측이 있었다고 하나 경기전 태조어전이 유일하게 남아 있고
익선관과 청색곤룡포, 백옥대와 흑화를 착용한 전신상에 가슴과 어께에 왕을
상징하는 다섯발톱을 가진 용이 그려져 있으며 1872년(고종 9)에 모사한 어진을
봉안하고 낡은 구본은 물에 씻어 백자항아리에 담아 진천북쪽에 묻었다고 한다.
정전 한가운데 감실을 두고 건국가의 위엄이 서려있는 태조어진을 봉안하고
감실에는 습기와 냄새를 제거하고 병충해를 막가위해 부용향을 담은 붉은색의
향주머니를 넣어두고 감실앞에는 어진을 호위하는 운검 한상을 세워두었고
정전 좌우편으로는 용선,봉선,홍개,청개등 의장물을 전시배치 하고 있었으며
오른쪽 눈섭위에는 사마귀가 그려져 사실적 묘사에 치중하였슴을 알수 있다.
御眞은 왕의 초상화로 御容,晬容,眞容,聖容이라하고 왕생존시 그리는 圖寫,
돌아가신후에 그리는 追寫, 기존어진을 본떠 그리는 模寫등이 있으며
태종은 털끝 하나도 다르면 그 사람이 아니다고 자신의 어진을 없앴고
인종은 어진을 그리지 말라했고 영조는 10년마다 어진을 그렸고 정조는 세번,
순조의 세자 익종(추존왕)은 22세때 사망하였음에도 8본이나 제작하였고
한국전쟁때 부산으로 이안했다가 1854년 창고에 불이나 소실되고 영조와
철종의 어진만 남아 태조어진과 함께 세분의 초상화가 현존한다고 한다.
全州史庫 고려시대부터 춘추관과 예문관을 상설 사관을 두고 날마다 時政을
기록하여 전왕시대의 역사를 편찬하여 실록이라 하여 사고에 봉안하여 왔고
조선시대 1409~1413년(태종 9~13) 태조실록 15권을 편찬후 1426년(세종 9)
정종실록 6권, 1431년(세종13) 태종실록 26권을 편찬 2부 등사하여 춘추관과
충주사고에 봉안하였고 1445년(세종 27) 다시 2부를 등사하여 전주와 성주에
분장하였다
임진왜란(1592)시 모두 소실되고 전주사고 실록만 손흥록, 안의등이 내장산
용굴암에 이안하여 병화를 면하였으며 전주사고에는 실록 784권 614책 47궤,
기타전적 64종 556책 15궤가 봉안되어 있었고 정유재란(1597)시 소실된
실록각은 1991년 복원하여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경기정과 어진박물관을 관람하면서 한복을 입고 정원의 숲속을 거니는
관람객들의 모습을 볼수있었고 전주사고 앞에서 해설사님의 상세한 해설을
듣고 오봉도가 그려진 어진박물관의 왕좌에 앉아서 잠깐 왕이되는 시간을
가진후 우리는 남부시장을 찾아갔다.
세상사 한마디
사랑은 자기옆에 있는 사람에게 자기가 가진
가장 좋은것 가장 아름다운것을 내어주는 것이다.
돌아오는것이 아픔과 상처뿐이더라도~~~
오늘도 사랑하며 배려하는 하루가 되시길~~
화장실 표시가 아름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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